‘동네 목욕탕 사장님’의 실천하는 힐링 ‘솔 사우나’ 대표 이 용

‘동네 목욕탕 사장님’의 실천하는 힐링 ‘솔 사우나’ 대표 이 용


우리의 일상 속에서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삶들이라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결코 평범하지만은 않은 면면들과 이야기들을 발견하게 된다. 유명인의 성공 스토리가 우리를 꿈꾸게 하고 앞으로 달려가게 한다면, 주변 이웃의 평범한 듯 “비범한” 삶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잠시 멈춰서서 살아가는 이유와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한다. 뉴저지 Palisades Park 시(흔히 “팰팍”이라고 불린다)에 위치한 “솔 사우나” 의 사장 이용 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도 그가 추구하고 실천하는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깊은 공감 때문이었다. 

빈손으로 미국에 들어와 어엿한 사업체를 성공적으로 이루어 내었다는 점에서 그의 이야기도 분명 ‘성공 스토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굳이 자신을 “그냥 동네 목욕탕 사장”일 뿐이라며 낮추고 낮춘다. 겸손함이 몸에 밴 탓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자신의 이야기가 일부의 성공 사례 정도로 퇴색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인 듯 보였다. 그는 우리가 모두 치열한 삶 속에서 자칫 잊어버리기 쉬운 소중한 것들에 관해 이야기 하고자 했다.



일에 지치거나 몸이 이유 없이 찌뿌듯한 날이면 잠깐 들러 씻고 쉬다오는 사우나가 있다. 그런데 이곳에는 특이한 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입구부터 내부 곳곳에 진열된 동양 산수화 도자기들이다. 보통은 항아리나 그릇 모양의 자기들을 떠올리겠으나, 이 경우는 그림이 그려진고가의 판 형태의 백자들이다. 규모나 형식이 한국적임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자연스레 그 공간의 주인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게 한다. 다른 하나는 고객들과 직원들이 수시로 사장님 칭찬을 한다는 것이다. 고객들이야 서비스가 마음에 들어 그럴 수 있다 쳐도 직원이 뒤에서 상사를 칭찬하는 모습은 다소 낯설다. 그래서 그 궁금증을 자아내는 주인공을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이용이라고 합니다. 전 중국 길림성 훈춘이라는 곳에서 태어난 한국계 중국인, 그러니까 중국 교포라고 보시면 돼요.”


중국 교포라는 소개로 그 이국적인 작품들은 설명되었다. 대신 어떤 이유로 중국 교포가 이곳 미국 뉴저지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 배경이 궁금해졌다.

“독립투사 가정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평생 교육자셨어요. 그래서 전어린 시절 내내 아버지로부터 공부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자랐죠. 자녀 교육에 대한 열정은 어머니도 아버지 못지않으셨어요. 그런 부모님의 격려와 지지 덕분에, 한국에 중국 유학생이 거의 없던 그 시절에 제가 한국으로 유학을 갈 수 있었어요. 한국으로의 유학은, 제 인생에 있어서 큰 변화의 계기가 되었어요. 

명지대학교 음악학과 석사 과정에 들어가 현대음악 작곡을 공부했는데요. 운 좋게도 당시 현대음악 분야의 권위자였던 이복남 교수님 밑에서 공부하게 되었고요. 2004년에 아시아 젊은 작곡가 8인을 뽑는 콩쿨에서 입상을 한 덕에 예술의 전당에서 연주회를 하게 되었는데요. 그때 제 연주를 들은 뉴저지 Rutgers 대학의 Gerald Chenoweth 교수로부터 박사 과정으로 오라는 제안을 받게 된 거죠. 정말 꿈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라 주저 없이 미국행 비행기를 탔어요.”


꿈같은 기회를 얻어 Rutgers대학에서 공부한 것도 잠시, 그에게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닥쳤다. 그의 든든한 지지자였던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가까이서 아버지를 봉양하지 못한 자식으로서의 죄책감이 몰려왔다. 동시에 이젠 장남으로서 가족을 부양해야겠다는 책임감도 들었다.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졌어요. 처음엔 어떻게든 Rutgers대에서 공부를 계속해 보려고 노력을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어요. 결국은 등록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뉴욕 맨해튼의 Blanton-Peale 대학원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실망과 좌절은 항상 또 하나의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주는 법인 것 같아요. Blanton-Peale에서 상담학을 공부하면서 자아를 돌아보게 되었고 미래를 지향하게 되었어요.”

유학생들에게 갑작스러운 부모님의 부고는 청천벽력 그 이상이다. 더욱이 그로 인해 어렸을 때부터 해왔던 자신의 전공까지 포기해야 했던 그 심정이야 오죽했을까. 그런데 그는 속상하고 힘들었다는 말 대신, 그 시련 덕분에 새로운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했다. 학교에서 배운것을 현실에 제대로 접목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Blanton-Peale을 졸업한 후에도 그곳에서 동료 그룹(peer group) 리더로서 활동했는데요. 음악과 상담을 결합한 음악 치료를 개발해서 주변 사람들을 돕기도 했죠. 이후에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스파(spa) 사업에 관심을 가졌어요. 중국 문화하면 스파를 떠올릴 수밖에 없거든요. 오래된 전통과 문화인지라 모든 사람이 그에 익숙하고 친숙해져 있어요. 저도 그 익숙함과 친숙함 때문에 스파 사업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죠. 또 제가 음악과 상담을 전공한 것이 이 사업을 하는데 영향을 미친 것도 없지 않고요.”


현대음악, 상담, 그리고 스파 비지니스 사이의 연결 고리가 딱히 떠오르지 않아 갸웃거리고 있는데 ‘힐링’(healing)이라는 비교적 익숙한 단어가 들려왔다. 그는 음악, 상담, 스파 서비스는 모두 효과적인 힐링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공통분모가 있다고 했다.

“중국인들은 정신적인 문제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사회적으로도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긴 사람들을 위한 치료나 복지가 거의 전무해요. 반면에 마사지처럼 몸을 힐링하는 문화는 굉장히 발달되어 있어요. 몸을 건강하게 하면 정신은 자연히 따라서 건강해진다는 믿음이 있는 거죠. 어느 정도는 맞는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제 생각은 좀 달라요. 진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몸과 정신을 같이 힐링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학교에서는 정신적 힐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음악과 상담학을 공부했고요. 일하기로 결정하고 나서는 몸을 힐링하는 스파 서비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힐링에 관심을 가지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물었다.
“사는 게 쉽지가 않잖아요. 혈혈단신 유학 와서 자리 잡기까지 저도 아주 힘들었고요. 주변에 고생하는 사람들도 정말 많이 봐왔죠. 사업이라는 게 결국은 돈 벌자고 하는 거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힘들고 지친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는 사무실에 혼자 앉아 일하지 않는다. 늘 직원들과 함께 움직이고, 틈날 때마다 사우나를 드나드는 손님들과 수다를 떤다. 전문적인 상담 훈련을 받은 그가 깨달은 상담의 본질은 진실한 소통이라고 한다.

“상담이라는 게 따지고 보면 단순해요. 상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그 사람의 내적 세계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거예요. 물론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을 가슴에 품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요. 오랫동안 손님들과 얘기를 하다 보니 이제는 첫인상만으로도 그 손님이 뭘 원하는지 알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 같아요. 직원들하고의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미국에 와서 고생해 봐서 지금 이 친구들 심정을 알거든요. 잘해 줘야죠.”

어느 날인가는 70세가 훌쩍 넘은 듯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사우나에 오셔서 “어디 갈 데도 없는데 그냥 좀 들어가면 안 돼요?” 하셨다. 이에 그는 망설임 없이 할머니를 안쪽으로 안내해 드렸다. 순간 중국에 계신 어머니 생각이 나서였다.


“사업하는 피는 어머니한테 물려받은 것 같아요. 공부만 하셨던 아버지와는 반대로 회계사이신 어머니는 정말 활동적이고 사업을 잘하셨어요. 앞에 말씀드렸듯이 교육열도 대단하셨고요. 어려서부터 제 특기를 개발하시려고 기타, 서예 등등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우게 하셨고요. 제가 피아노를 배우고 작곡을 공부하게 된 것도 어머니 덕분이었어요. 12살 때부터 장춘이라는 먼 도시로 피아노를 배우러 다녔는데요. 어머니는 제 레슨을 위해 저와 함께 12시간을 기차를 타는 일도 마다하지 않으셨던 거죠.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본인이 곁에 있으면 제가연습을 소홀히 할까 봐 염려되셔서였을까요 선생님 옆에서 제대로 배워야 한다시며 저를 아예 그 선생님 댁에 살게 하셨어요. 그런 어머니가 저한테 늘 하셨던 말씀이 “사람이 잘 되려면 벌(도시)로 나가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 영향으로 제가 이렇게 미국까지 와서 사업하면서 사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이제는 연세가 많으셔서 제가 보살펴 드려야하는데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항상 마음이 무거워요. 올해는 어머니 생각이 별스레 더 많이 나서 어버이날에는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어머니
께 감사 편지를 썼어요.”


‘잔소리’라는 제목의 편지에는 타국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고마워하는 막내아들의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렇게 싫었던 엄마 잔소리가 그립다고 했다. 그리고 그 잔소리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음을 깨달았기에 한없이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어린 시절 그렇게 큰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랐으면서도 정작 제가 아빠가 되고는 어떻게 해야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는지를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그냥 내 자식만은 고생시키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래서 솔 사우나 오픈하고 거의 1년 동안을 집에 안 들어갔어요. 아침 7시에 문 열어서 새벽 2시에 문 닫고, 사우나에 있는 기계들을 다 점검하고 나면 새벽 5시가 되요. 그 시간에 들어가면 아내랑 아이들을 깨울것 같아서 그냥 사무실에서 잠깐 눈 붙이고 출근하고 그랬죠. 그런데 어느 날 큰 애가 학교 선생님이 아빠 직업을 묻는데 아빠가 없다고 했다는 거예요. 그 일로 정말 큰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싶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니 제가 그 성공이라는 두 글자에 매료되어서 일만 하며 달렸던 것 같아요. 정말 한심한 일 중독이었던 거죠.”


2008년에 결혼한 그에게는 일곱 살, 세 살 된 두 딸이 있다. 그는 매주월, 화요일을 아내와 딸들과 보내는 가족의 날(family day)로 정했다. 아무리 바빠도 이 이틀만큼은 식구들과 먹고 싶은 것 실컷 먹고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면서 오로지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고자 한다. 성공한 사업가와 행복한 가장 둘 다 이룬 그에게 더 바라는 것이 있는지 물었다.

“미국에 와서 배운 게 있다면, 미국 사람들은 어느 정도 돈을 벌게 되면‘나눔’을 생각한다는 거예요. 제가 실천할 수 있는 나눔은 힐링과 관련된 일을 계속해 나가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음악 상담 치료 그룹의 리더로 활동하면서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돕고 있고요. 뉴저지 영광 교회(정광희 목사님 시무)에서 지휘자로 봉사하면서 신자들의 영적 힐링을 돕기도 해요. 힐링 사업도 확장하고 있는 중이에요. 

이민 사회, 교포 사회의 힘든 것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지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안 좋아서, 사람들에게 잠시라도 위안을 줄 수 있는 한국식 휴식처(가칭 “Korean Village”)를 만들어보려고 해요. 펜실베니아에 있는 Equinunk와 Damascus 에 좋은 부지를 마련해서 7월부터 공사에 들어갔고요. 2년 후에 완공될 예정이에요.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한국은 저한테도 제2의 고향으로 느껴지거든요.”


행복한 삶의 척도로서 심신의 건강을 강조하는 웰빙(well-being) 붐이 일던 무렵, 웰빙을 위해서는 고단한 삶에 지친 몸과 마음을 치료해야 한다는 힐링의 중요성도 동시에 부각되었다. 하지만 치열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에게는 웰빙도 힐링도 그저 남의 얘기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이용 씨는 그들의 어려움을 진심으로 공감하고 이해하기 때문에 실천할 수 있는 힐링을 이야기하며, 동시에 그들의 심신의 치유를 도우려고 노력해 왔다. 그가 말하는 힐링은 휴식, 소통, 가족으로 정의되는 듯하다. 그는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업으로 하고, 그를 찾는 사람들과 진심으로 소통하며, 사랑이 넘치는 화목한 가정을 꾸려 나감으로써 가족의 소중함을 몸소 보여 준다. 더불어 그는 주변 사람들과도 서로 힐링을 주고받을 수 있는 가족 같은 관계 형성이 가능하다고 한다.


“한국 유학 시절 그 고단함과 힘든 생활 속에 제 곁에는 항상 교수님들과 학우들이 있었어요. 그중에서도 박종대 교수님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제가 너무 힘들어 방황했던 시기에 정말 인생의 멘토로서 위로가 되어 주시고 가이드가 되어 주신 분이죠.”

그는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다음 세대를 위해 살라”고 얘기한다고했다. 이 말이 너무나 가난하고 배고팠던 우리 부모 세대에게는 자식에게 금전적으로 좀 더 여유로운 삶을 물려줄 수 있도록 열심히 살라는 뜻으로 해석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다음 세대가 좋은 사람들과 조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라는 뜻이라고 했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그의 논리는 단순하다. 각자가 자신을 치유하고 타인을 배려하면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러한 부모의 삶을 보고 배우며 자연스레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진행 Jennifer Lee 글 Juyoung Lee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