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만남 시리즈 (1) 스튜디오 탐방 유선미 작가

2017-11-08

작가와의 만남 시리즈 (1) 스튜디오 탐방 유선미 작가


예술의 도시 뉴욕이다.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방문할 기회는 많다. 하지만 아티스트의 스튜디오를 직접 들여다볼 기회는 흔치않다. 장소와 규모를 떠나 작가의 작업실은 특유의 분위기와 공기가 분명히 있다. 미완의 작품들 혹은 습작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작업실 한구석에 앉아, 차라도 마시면서 작가와 직접 이야기를 나눈다면, 전시회 오프닝이나 카페에서 만나는 것보다 더 분위기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에스카사는 ‘작가와의 만남 시리즈’ 첫 번째 기사를 위해 롱아일랜드시티에 있는 유선미 작가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작품과 전시에 관한 것보다 뉴욕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것이 어떠한지가 궁금해서 두서없이 이것저것 물어봤고, 시원시원 대답하는 작가와 편안하게 수다를 떠는 듯한 기분으로 이어진 인터뷰였다.






욕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작가로 알고 있습니다. 자기 소개를 더해주세요.

저는 회화와 설치 미술을 하는 작가 겸 다른 아티스트들의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입니다. 8명의 작가와 함께 TSA NY이라는 비영리 갤러리를 브루클린에서 운영 중인 갤러리스트이기도 합니다. 퀸즈 박물관, 뉴욕 한국 문화원,베를린 한국 문화원, 독일 쿤스탈레 슬라우스 발모랄, 서울 예술의 전당, 와그너 대학을 포함한 다수의 뉴욕, 서울, 베를린, 달라스, 콜롬보스, 시카고 갤러리들에서 전시했어요. 2012년부터 프레지던트 클린튼 프로젝트(President Clinton Projects)라는 전시 기획 프로그램을 진행 중입니다.


요즘은 어떤 작업을 하시죠?

조각과 설치라고 할 수 있어요. 제 작업이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벽에다가 하는 설치? 아직 대중에는 공개하지 않은 새로운 시도를 하는 중입니다. 페인팅이라고 하기엔 그렇고 일종의 믹스드 미디어인데 어떤 미디움, 오브제로 제 작업을 규정하기엔 어려워요. 조각적인 회화 혹은 회화에 가까운 조각이라고 설명할게요. (독자들에겐 다소 어려운 설명일 수도 있지만, 스튜디오에서 작업 중인 작품을 직접 보면서 듣는 기자에겐 작가의 설명이 더욱 쉽게 이해가 되었다.)


한국에서 태어나셨죠? 어떻게 미국에 왔으며 미술은 무슨 계기로 시작을 하게 되었죠?

고1 때 가족들이 애리조나로 이민을 왔어요. 시골은 아니고 조그만 도시였는데 학교에 동양인은 거의 없는 그런 곳이었어요. 1.5세라고 할수 있는 나이죠. 미술을 하게 된 동기는…. 무슨 대단한 꿈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고등학교 때 미술 프로그램이 좋았어요. 담당 선생이 재능있다고 계속해 보라고 권했습니다. 실제로 상도 많이 받았어요. 매년 백악관이 각 주에서 한 명씩 선정하는 상 아시죠? 애리조나 대표로 그 상도 받았어요. 원래 공대 입학 허가 받아 놓고 결국 미대로 진로를 바꿨어요. 선생님의 추천대로 디자인과 애니메이션 전공이 좋은 소수 정예 기숙사가 있는 학교에 진학했습니다. 대학원은 미시건의 웨인 대학을 나왔습니다.


졸업 후 활동에 대해서도 들려주세요. 곧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나요?

대학 졸업 후 오랫동안 노마드의 생활을 했습니다. 괜히 멋있게 들리려고 하는 말이 아니고 어쩌다 보니 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게 되었어요. 우선 케냐에 봉사 활동을 갔다 왔고, 유학생 남자 친구가 있던 시절에 한국에 가서 작가 활동을 했어요. 1990년대 후반, 대략 2년 정도요. (어차피 이야기를 해줬을 텐데 한국에 갔었다는 대목에서 생활은 어떻게 했냐고 냉큼 물어봤다) 홍대 근처에서 작업실 얻어서 지내면서 전시활동을 하는 중에 영어를 가르쳤어요. 일종의 연예인 대상 전문 강사였어요. 오연수, 전인화 등 당시 유명 연예인. 그리고 대형 학원인 파고다 어학원에서 소수 정예 1대1 클래스를 맡아서 대기업 중역 등을 상대로 고액 영어 선생 노릇을 했습니다.


그냥 한국에서 작가로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나요?

장단점이 뚜렷했어요. 물론 편하고 재밌는 점도 있었죠. 그런데 막상 가보니 내가 어느새 너무 미국화되었다는 걸 느꼈어요. 이질감과 불편함이 보였죠. 무엇보다 90년대 후반의 한국은 젊은 작가가 활동하기에 결코 편한 환경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한국을 떠난 후 곧장 미국에 돌아오지 않고 13개월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배낭여행을 했어요. 그 후에 오하이오 컬럼버스의 대학에서 강의했고요, 뉴욕에도 잠시 머물렀다가 M.I.T에 티칭 기회가 생겨서 갔었고, 그리고 약 10년 전에 뉴욕에 다시 와서 계속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럼 뉴욕은 종착지가 되는 건가요?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할 계획은 없는거죠?

결국엔 내가 뉴욕에 오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늘 있었습니다. 작가라면 결국 궁극의 목적지가 뉴욕이 아닐까요? 사실 제가 대학을 SVA에 다닐 기회도 있었어요. 그랬으면 그때부터 이곳에 정착했을 수도 있겠죠. 뉴욕이라는 도시는 늘 원하지만 두려움이 있던 그런 곳입니다.


왜 결국은 뉴욕이냐는 질문을 안 할 수가 없네요.

저도 스스로 했던 질문이에요. 왜 뉴욕인가? 아니라면, 그럼 어디인데? 그리고 답이 안 나오는 거죠. 물론 여기만 제대로 된 미술을 할 수 있는 곳이란 뜻은 아니죠. 파리, 런던, 베이징, 서울 어디에서든 작품을 못하겠어요. 저는 한때 미술 도시로 핫 하다고 소문난 베를린도 갔었어요. 하지만 결국 뉴욕만큼 좋은 작업이 나올 수 있는 곳은 찾기 어렵다는 결론이죠. 왜냐면 작품이란 주위와의 교류, 자극이 영감이 되는 건데 뉴욕만 한 곳이 없어요. 자기 작업실에서 혼자 낑낑거리며 머릿속에서 창작하던 고전적인 천재의 시대가 아니고, 동시대 작가와의 교감, 교류 그리고 첨단 트렌드와 꾸준히 접촉하는 게 작가로서는 생명 아닐까요?


근데 뉴욕이 갈수록 너무 비싸잖아요. 미술가는 소설가처럼 책상 하나만 있으면 작품을 써내는 직업도 아니고 물리적인 공간이 필요한데 주거 공간, 작업 공간에 들어가는 돈이 너무 많이 들죠?

말도 못 하게 비싸죠. 그래서 뉴욕 작가들은 예전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이스트 빌리지, 로어 이스트, 윌리엄스버그, 부쉬윅 등 계속 뉴욕 주변으로 이동했죠. 업스테이와 뉴저지 등으로 이동의 폭이 넓어지고 있어요. 그 비싼 공간에 대한 비용으로 작업 외에 돈벌이를 위해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하고요. 저도 방송 코디, 아트 투어 등 틈틈이 부업을 해야했죠. 근데 주류 미술계도 다른 분야처럼 속물적인 성격이 강해요. 마치 강남에 산다, 센트럴파크 주변에 산다 그런 것이 지위와 성공의 기준으로 평가받듯이, 첼시에 스튜디오가 있다. 그러면 대접받는 거죠. 작업실이 퀸즈다 그러면 조금 시선이…. 그러니까 주변으로 너무 밀려나지 않는 게 중요해요.


그렇게 힘든 환경에서 공동이지만 스튜디오도 갖고 계시고, 갤러리도 운영 중이고, 자기 전시뿐 아니라 동료 작가들이 큐레이팅도 진행하시고,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이 좋습니다. 계속 정진하시고, 나중에 전시회장에서 다시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유선미 (Sun You)

Marble House Project, ACE Hotel, Atlantic Center for the Arts, Triangle Arts Association, Künstlerhaus Schloss Balmoral등을 포함 미국과 독일에서 다수의 레지던시로 초대되었다. Pratt Institute, Maryland Institute College of Art, Kyoto Saga University of Arts 에서 Teaching과 Visiting Artist로 활동하였다. 현재 베를린 Scotty Enterprise 갤러리, 브루클린 Underdonk 갤러리에서 전시 중이며 Artist Book Project가 곧 출간된다. 내년에 SARDINE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