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와 물류가 만난 ‘4차 물류 혁명’ NANOIT 박상수 대표

IT와 물류가 만난 ‘4차 물류 혁명’ NANOIT 박상수 대표


오늘 주문하면 내일 도착하는 일명 ‘로켓배송’의 시대. 하지만 하룻밤 사이에 국제 상품을 주고받을 수 있는 날을 상상해본다면 그야말로 아득히 먼 미래처럼만 느껴진다. 그 꿈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역시 말 많은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난 후여야만 할까?

정보통신기술(ICT) 전문 기업인 나노아이티(NANOIT)는 4차 산업혁명을 조금 더 앞당길 만한 물류 플랫폼을 구축해 우리의 상상을 현실화시키고 있다. 물류 산업에 IT를 융합한 이 플랫폼을 이용하면, 단 1박 2일 만에 베트남 호치민으로 물건을 보낼 수 있다. 이른바 나노아이티의 4차 물류 혁명이다. ‘수출'이라는 말이 무겁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중소기업들에게 그야말로 한 줄기 빛과 같은 플랫폼임이 분명하다.

나노아이티의 박상수 대표는 한번의 파산과 몇번의 실패를 맛봤지만, 7전 8기의 오뚝이 정신으로 업계 10위권 내 진출, 연 매출 180억이라는 쾌거를 이뤄낸 장본인. 대기만성이라는 사자성어를 떠오르게 하는 나노아이티 박상수 대표의 인생담과 전 세계가 주목하는 나노아이티만의 신기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나노아이티는 어떤 회사인가요?
나노아이티의 첫 시작은 eBI(e-business integrator) 사업이었어요. 인터넷 홈페이지 구축에서부터 인터넷 광고와 온라인 홍보까지, 인터넷 비즈니스의 전반적인 지원을 하는 일이었어요. 그리고 현재 꾸준히 진행하는 사업은 비지니스 커뮤니케이션이에요. 쉽게 말해 기업의 비지니스 활동에 필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 중, 스마트폰 환경에 특화된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죠.

예를 들어 통장 입출금 내역을 알리는 은행 앱의 푸쉬 알림과 같은 서비스입니다. 또 그 기술을 바탕으로 사업을 확대해 물류·IT 컨버전스 사업을 시작했어요. 쉽게 말해 물류와 IT기술을 융합하여 국내 기업의 직수출을 돕는 플랫폼입니다. 이 플랫폼을 이용하면 1박 2일 만에 동남아시아로 상품을 수출할 수 있어요.

신규 사업인 물류· IT 컨버전스 사업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나요?
저희 플랫폼을 사용하면 D2D(Door to door) 서비스가 가능해요. D2D는 1박 2일 만에 문 앞에서 문 앞까지 배송해준다는 뜻으로, 프리미엄 글로벌 특송 시스템이라고도 하죠. 이 D2D 서비스는 일반 소비자뿐만 아니라, 빠른 배송을 필요로 하는 신선 식품 쪽에 적용하기 좋아요. 그래서 수출에 상대적으로 소외되어있는 국내 농가들의 수출을 장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또한, 저희 플랫폼은 중소기업의 테스트 베드(Test Bed) 즉, 시험 무대로 이용하기 좋아요. 해외에 있는 바이어들은 성공할지 실패할지 알 수 없어서 재고 위험 부담을 굉장히 많이 느끼죠. 그런데 이 플랫폼을 이용하다가 성공할 여지가 보이면, 그때 본격적인 해외 진출을 할 수 있어요. 사실 중소기업들이 직접 해외로 직접 수출을 하려면 각종 전산이나 관련 법규부터 이해해야 하고 부대비용 역시 엄청 많이 들죠. 예를 들어 10만 원짜리 물건 하나를 수출하면 관세 의무만 2만 원이 들어요.

이처럼 국내 중소기업의 경우 직수출이 매우 힘들어요. 하지만, 저희 플랫폼을 사용한다면 어떤 중소기업이든 비용 없이 그리고 쉽게 동남아시아에 진출할 수 있어요.

1박 2일 만에 배송을 한다는 것은 사실 국내 배송 시스템에서도 한계가 있는데 어떻게 해외에 이런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었나요?
베트남 현지에 법인을 설립해서 웨어하우스를 운영해요. 그렇지만 거리상으로 굉장히 멀기 때문에 전산화 시스템이 구축되어있지 않으면 D2D 서비스는 이룰 수 없죠. 저희는 IT 기업이고 물류 직수출을 위한 배송 전산화 시스템이 모두 갖춰져 있었기 가능했어요.

또한, 이커머스(electronic commerce)라 불리는 컴퓨터 통신망을 이용한 전자상거래에서는 ‘배송'과 ‘결제'가 핵심입니다. 베트남 같은 경우는 물건을 살 때 카드로 결제를 하지 않고, 물건을 받고 난 후에 돈을 입금하는 COD(Cost Of Delivery) 시스템을 이용해요. 이런 독특한 결제 시스템 때문에 알리바바와 옥션 같은 글로벌 기업도 진출하기 어려운 곳이죠. 그런데 저희는 D2D와 COD를 베트남에 구축했어요. 최초이자 유일해요. 그래서 베트남의 알리바바라는 닉네임으로 불리기도 하죠.  

그렇다면 물류· IT 컨버전스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현재 Cj대한통운의 협력사와 G마켓의 베트남 판매대행사의 권한을 가지고 활동하고있어요. 또한, 국내 최대 e커머스 사이트인 도매꾹과 베트남 MOU (Memorandum Of Understanding)를 체결해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죠. 베트남이 주요 거점이기 때문에 베트남에서 성공적으로 서비스를 구축하면 주변국인 말레이시아나 라오스 쪽으로 진출할 계획이죠.

그렇다면 나노아이티는 현재 업계에서 어떤 입지에 있나요?
연 매출은 180억원 정도로 소재지는 대구지만 고객의 95%가 서울・경기 업체예요. 비즈메세징 부분은 출시 3년 만에 3대 통신사를 제외하고 10위권에 안에 진입하는 쾌거를 이뤘죠.

또한, 자체 개발한 대용량 기업메시징 전송 게이트웨이가 대구지역 업계 최초로 ISO 국제 표준을 기준으로 소프트웨어의 기능성, 신뢰성, 사용성, 성능 등의 엄격한 시험과정을 거쳐 부여하는 국가 공인 인증 제도인 ‘굿소프트웨어(GS)인증 1등급’을 획득했습니다. 이에 더해 ‘메시지 발송 시스템 및 방법 특허’와 관련 특허 2건을 더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픈소스를 이용해서 제작한 순수 토종 국내 소프트웨어라는 점이 더 높은 평가를 받고있어요. 이런 점들을 인정받아서 대구시 스타 기업에도 선정됐어요.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진출하기 굉장히 힘드셨을 것 같은데, 지금의 나노 아이티가 있기까지 대표님의 인생 이야기도 궁금해지네요. 
저는 개인회생 신청을 두 번이나 할 만큼 굴곡진 인생 그래프를 그리며 살았습니다. 2000년대 초반 대학생 시절에 eBI(e-business integrator) 로 창업을 했어요. 당시 신학문이다 보니까 졸업할 때 책을 몇 권씩 쓰기도 하고 영진전문대학교에서 교수로도 재직했죠. 아마 그때는 촉망받는 벤처기업이었겠죠? 그러다가 게임 개발 사업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얼마 후 사업은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결국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에서도 쫓겨나게 됐죠. 그러다가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재정적 어려움에 개인 회생을 신청하러 갔어요. 그런데 신청 절차도 복잡하고 의뢰를 하려면 200만 원이라는 법무 비용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망해서 간 사람에게는 너무 큰 돈이었죠. 그래서 법무사 사무장을 맡고 있었던 친구에게 도움을 구했고, 함께 준비하다 보니까 ‘어? 이걸 왜 돈을 달라고 하지?’ 할 만큼 플랫폼만 구축된다면 스스로 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거예요. 그래서 사업 계획서를 쓰고 투자를 받아서 개인 회생 및 파산 신청서 자동 작성 프로그램 ‘호퍼(Hoper)’를 개발해 다시 재기를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죠. 


대학생 스타트업 경진대회 GYES


그런 아픔을 딛고 난 후, 나노아이티를 오늘날까지 이끌어오신 건가요?
여기서 끝이 아니었어요. 이제 다시 일어서나 했는데 법무사들에게 어문저작물 저작권법 위반으로 집단 소송을 당해서 영업 정지 가처분에 처해졌죠. 소송은 3년이나 진행됐고 어렵사리 일궈놓은 회사가 또 다시 무너졌죠. 개인회생신청을 하게 됐을 그 당시만 해도 불법 채권 추심을 방지하는 법이 없을 때라서 파산 신청을 해도 가족들에게 협박 전화도 오고 그랬죠. 사실 죽을까도 생각할 만큼 힘들었어요. 그런데 죽는 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죽을 용기도 없는데 이 용기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다시 시작한 게 바로 나노아이티에요. 그렇게 20013년도에 개인 회생 면책 인가를 받아 빚의 50%를 면책받았죠. 나머지 50%의 빚을 다 갚은 후에 상황이 좋아져서 면책받은 빚까지 모두 다 갚고 재기에 성공했어요. 그리고 2018년 4월, 18년 만에 다시 대표이사 자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정말 파란만장 그 자체네요. 두 번씩이나 쓰러졌다 다시 일어선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다시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자신만의 무기는 무엇인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 그리고 자신을 믿고 꾸준히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이루고자 한다면 어떤 수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굳게 믿고 진득하게 실천해야 해요. 사실 지방 기업이 성공하기에는 지역적 한계를 무시할 수 없잖아요. 그런데도 나노아이티가 업계에서 10위권 안에 들 정도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 역시 ‘꾸준함' 이었던 것 같아요.

‘꾸준함'을 강조하셨는데, 이와 관련된 일화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재기의 발판을 제대로 마련하고 싶어서 서울로 올라갔을 때였어요. 그런데 만나는 사람마다 ‘너는 지방에 있어서 연락하기 힘들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KTX로 한 시간 반이면 오는 거린데 뭐가 걱정이십니까? 그게 문제가 된다면 일주일에 반은 제가 서울에 있겠습니다.”라고 말했죠. 그때부터 월화수요일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무조건 서울에 있었어요. 그렇게 1년이 지나니까 믿어주기 시작했고, 그게 올해로 5년 째네요. 이제는 제가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한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시는 분이 없죠. (웃음)


베트남 합작 법인 설립 MOU


정말 꾸준함의 아이콘이신 것 같아요. 프로필의 이력을 살펴보니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셨고 그 외에도 두 개의 학위가 있으시던데, 배우는 것 또한 꾸준히 해오셨네요.  
원래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죠. 그런데 대학생 창업을 하고 보니까 제 전공 외의 첨단 정보 통신 쪽의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단국대 정보통신 대학원을 가서 부족한 부분을 공부했고, 그 후에 한 회사를 이끌어가는 대표로서 경영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또한 필요할 것 같아서 현재 경영학 박사까지 수료한 상태입니다.

7전 8기라는 말이 떠오를 만큼 강철 멘탈의 소유자시네요. 
강철멘탈 뭐 이런 거창한 말은 쑥스럽네요. 그때는 정말 꾸준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 저를 그렇게 만들었어요. 지금은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책도 있듯이 실패도 경험이라고 말씀해주시지만, 2004년 당시에는 실패한 사람들에게 사회적으로 시선이 참 차가웠죠. 망한 사람에게는 다시 교수 자리가 돌아오지도, 누군가가 선뜻 손 내밀어주지도 않았죠. 그래서 다른 곳을 돌아볼 여유가 없이 앞만 보고 달렸던 것 같아요.

18년 만에 대표이사로 복귀하신 만큼 각오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 앞으로 나노아이티를 어떻게 이끌어가실 계획인가요?
단기적으로는 지금 하는 글로벌 4차 물류 혁명을 통해 2020년까지 중견 기업 수준까지 올라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비전 2020’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IPO(Initial Public Offering)를 목표로 하고 있죠. 그런데 이제 매출과 같이 양적인 목표는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제일 중요한 건 ‘구성원들이 만족할만한 회사’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해요.

이제는 질적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구글과 같은 세계적 IT기업 같은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회사, 자율적으로 일 할 수 있는 회사, 평생직장으로 생각하는 그런 회사가 되는 것이 최종 목표예요.


글 손시현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