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안개 너머, 비밀의 화원을 찾아서 자연을 그리는 작가 김상열

2019-05-02 13:24

물안개 너머, 비밀의 화원을 찾아서 자연을 그리는 작가 김상열


부모님을 여읜 메리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모부의 저택이 있는 영국으로 향한다. 메리는 그곳에서 하녀 마사와 그녀의 동생 디콘과 함께 비밀의 화원을 발견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곳에서 사촌 콜린을 본 메리는 그를 비밀의 화원으로 데리고 간다. 그곳에서 아이들의 가슴에는 사랑이 피어나고, 그 사랑은 콜린의 아버지를 비롯한 차가웠던 어른들의 심장에 다시 온기를 맴돌게 한다. 이 이야기는 영국의 소설가 프란시스 호지슨 버넷(Frances Hodgson Burnett)의 고전 소설 『비밀의 화원(The Secret Garden)』의 내용이다.

(출처=본사취재)

작가 김상열, 그의 작품은 ‘소설 속 비밀의 화원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하는 물음표에 상상의 날개를 단다. 물안개 낀 숲속 호숫가를 연상케 하는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미지의 세계에서 속삭이는 아이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의 작품들이 탄생하는 곳 역시 소설 속 비밀의 화원만큼이나 아름다운 곳이다. 1999년 9월 폐교가 된 후, 마치 30년 전 모습 그대로 시간이 멈춘듯한 이곳, 김전 초등학교가 그의 작업실이다. 그곳에 실존하는 ‘작가 김상열의 비밀의 화원’으로 향했다.



(출처=본사취재)

경북 청도에 작업실을 두고 계시는데, 이런 푸르른 나무가 울창한 곳에서 작품활동을 한다면 자연환경으로부터 영감을 받는 부분이 많을 것 같아요.
네. 제가 김전 초등학교에 온 지도 벌써 15년이 됐네요. 이 폐교 건물 바로 앞에는 잘 닦아놓은 도로가 있어서인지 시곗바늘을 30년 전으로 돌려놓은 느낌이 들곤 하죠. 그리고 이곳은 제 고향마을 경주의 건천과 굉장히 닮은 곳이기도 하고요. 청소년기에 살던 집 앞에는 큰 저수지가 있었는데, 물안개가 자주 꼈어요. 이른 아침 안개의 흔적들을 한참 들여다보면서 상념에 잠겼던 기억이 납니다. 햇살이 산을 넘어 물안개를 스칠 때 아련한 감정이 샘솟기도 하고,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기도 했죠. 이곳 청도 역시 안개가 참 많은 지역이에요. 그래서 이곳에서 고향의 향수를 느끼며 많은 영감을 받아요.


이곳은 작가님의 작품 주제인 The Secret Garden과도 연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작품의 큰 틀은 언제나 자연이었어요. 그런데 The Secret Garden은 영국의 고전소설 『비밀의 화원(The Secret Garden)』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고아가 된 주인공이 한번 도 본 적이 없는 고모부의 저택으로 가면서 겪게 되는 성장 소설이죠. 우연히 아이의 책을 정리하다 발견한 이 책 속에는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우정과 행복을 발견하고 자연과 더불어 새로운 희망을 일궈 나간다는 마법 같은 이야기가 있었죠. 신기하게도 저의 시골에서 자란 유년기를 떠 올리게 됐어요. 그래서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지향해야 할 삶이며 자연을 조금 더 가까운 곳에 두고 자연을 통해 배우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죠. 올해로 The Secret Garden을 주제로 작품활동을 한지 딱 10년이 됐네요. 그래서 2018년은 제게 참 의미 있는 해예요.


약 2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쭉 작품활동을 해오셨는데, 그 사이 터닝포인트가 있었다면?
2008년 개인전이 될 듯합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생활비와 작업비용을 위해 일하면서도 작업의 끈을 놓지 않고 1~2년에 한 번씩은 개인전을 이어나갔습니다. 하지만 매번 전시에 대한 평가는 좋았지만, 주변 상황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았죠. 그래서 이렇게 해서 계속 작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꽤 힘든 시간을 보냈죠. 그리고 달라져야만 했습니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작업의 본질은 소통을 전제로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블로그를 시작으로 SNS를 통해 소통의 영역을 넓히며 제 작업을 알리기 시작했어요.  


작가 김상열은 2012년 페이스북을 통해 캐나다에서 한 통의 메시지를 받게 된다. 몬트리올에 위치한 르로이어 갤러리(Gallery LeRoyar)의 전속작가 제안이었다. SNS를 통해 얻은 결실이었다. 자신의 작품으로 세상과 소통을 시작한 지 올해로 8년째, 그는 영국과 스위스에서의 컨텍(contact)에 이어, 최근에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가구 회사<Company SHSdesign>와 함께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는 지역 작가라는 구분을 거부하며 오늘도 세상을 향해 먼저 다가선다.


에스카사 매거진 역시 페이스북을 통해 김상열 작가님의 작품을 접했습니다. 현시대의 작가로서 그 어떤 갤러리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 21세기의 갤러리, SNS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SNS를 통해서 지역적 간극이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K-pop의 싸이, BTS가 빌보드차트에서 선전하게 된 계기로 YouTube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SNS를 잘 활용한다면 어느 지역에서 작업한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단, 좋은 작업을 한다는 전제하에서요. 온라인상에서는 어느 곳이든 갈 수도 있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미술의 메카인 뉴욕과 런던, 베를린, 파리 등의 미술과 관련된 많은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죠. 특히, 작가에게는 미술관과 갤러리 등 현대미술과 관련된 여러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도움이 됩니다.


또 온라인상에서 다른 작가들의 작업을 접하다 보면 서로의 공통된 견해를 확인하기도 하고 작업의 지향점을 찾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몇 해 전부터 SNS를 통해 먼저 친구가 된 채성필 작가는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로 현재 프랑스 파리 인근의 오베르라는 지역에 작업실이 있습니다. 몇 해 전에는 한국에서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할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되었죠.

(출처=본사취재)

작품활동을 하면서 가장 좋은 순간 역시 소통을 할 때인가요?
네. SNS가 온라인 소통의 창구라면, 전시회는 오프라인 소통의 창구죠. 그래서 저는 전시를 열 때가 가장 좋습니다. 전시할 때는 새로운 인연을 많이 만나죠. 기억에 남는 일화 중 하나를 말씀드리자면, 갤러리에서 제 작은 소품을 구매하신 분께서 큐레이터를 통해 저를 직접 만나고 싶다고 전하셨죠. 그분은 제게 “직접 집에 들러 작품을 걸어줄 수 있냐”는 뜻밖의 제안을 하셨어요. 초대받은 날은 직접 차린 정성스러운 음식과 가까운 지인까지 자리를 함께해서 참 인상적인 날로 기억됩니다. 작가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느껴졌기 때문이죠. 그렇게 인연이 된 분과는 지금도 전시 때마다 만나고 연락을 하고 지냅니다. 이렇게 예술을 좋아하는 분들과 소통을 하고 인연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전시회를 열 때가 참 좋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구체적인 전시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다가오는 9월부터 두 달간 충남 아산에 있는 호서대학교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게 됐습니다. 오는 9월 10일부터 22일까지 동경의 Gallery Nayuta에서 일본 현대미술 작가 두분과 함께 3인전을 진행하게 됩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더 큰 시장에서 조금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싶어요.


작품활동 이외에도 강단에 서시는데, 제자나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요즘 아트페어 시장이 굉장히 활성화되어있어요. 조금만 주의 깊게 본다면 시장에는 비슷비슷한 그림들이 너무 많은 것을 알 수 있어요. 자기 것이 아닌 것으로는 오래 살아남지 못하죠. 이 분야는 독특한 자기 세계가 있지 않으면 힘든 세계죠. 그래서 후배들과 제자들에게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라”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이 말은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남을 뒤따르기보다 어느 분야가 되었던 선택한 일에 포기하지 않고 집중한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라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창작은 자신의 심장에 활시위를 당기는 일이라고도 하죠. 예를 들어 기존의 것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처럼요. 우리가 피카소를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와 같죠. 그는 끊임없이 자기 세계를 개척했으니까요. 비단 예술뿐만 아니라 각자의 지향점과 목표는 다를지라도 어느 분야에서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저 역시 좋은 작업을 위해 노력하는 좋은 작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글 손시현 / 정리 에스카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