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리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빛날윤미

2019-01-30 15:10

사람을 살리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빛날윤미


전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이름을 가진 바이올리니스트 김빛날윤미.

이름처럼 빛나는 그녀는 미스춘향을 시작으로 2017년 대한민국 한복모델 선발대회 최우수상, 2018년 미스그랜드코리아(DMZ 세계평화홍보 대사 선발대회)라는 국제 대회에서 미(美)에 선정된 바 있는 독특한 이력이 있다. 미녀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수식이 너무나 당연한 이력이지만, 그녀는 겉모습이 빛나는 사람 그 이상의 바이올리니스트다.  

전국 글로벌 음악 콩쿠르 전체 대상을 수상한 김빛날윤미는 연세대학교 관현악과를 졸업 후, 더 많은 사람에게 클래식을 알리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그녀는 현재 버스킹을 비롯한 정기적인 봉사활동과 재능기부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적인 선율을 선물하며 이름처럼 빛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사람을 살리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빛날윤미의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현재 바이올린 연주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전하고 계시는데,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요양원과 베이비박스(Baby box)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정기적으로 연주를 들려드리고 있어요. 베이비박스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된 부모가 아이를 안전한 곳에 두고 갈 수 있도록 마련된 상자예요. 베이비 박스를 통해 센터에 온 아이 중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안타깝게도 입양되지 못하고 센터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많아요.

제가 봉사를 하러 가는 센터에도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많은데, 많이 힘들 텐데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아요. 너무나 순수한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예요. 그래서 항상 그곳에 봉사를 하러 갔다가 제가 더 배우고 돌아오는 느낌이 들곤 해요.

최근에는 <오산시 학교 밖 청소년 지원 센터:꿈드림>에서 뜻깊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들었어요. 이 활동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네. 남편인 오현호 파일럿과 함께 경기도 오산시의 학교 밖 청소년 센터 꿈드림에서 고 아웃사이드 라는 프로젝트를 맡게 됐어요. 지역마다 있는 자퇴를 한 아이들을 지원하는 청소년 센터 내의 활동으로, 이 아이들이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고, 진정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도록 멘토링을 하고 다양한 활동을 함께 했어요.

그중에서도 제가 담당한 메인 프로젝트는 ‘버스킹 프로젝트'였는데, 아이들이 직접 작사한 것을 모아 ‘고 아웃사이드(GO OUTSIDE)'라는 곡을 만들고, 뮤직비디오도 촬영했죠.

요양원, 베이비 박스에 이어 청소년 멘토링까지, 정말 다방면으로 재능기부를 하시네요. 음원까지 출시할 정도의 프로젝트를 맡으셨다니,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처음에는 아이들과 친해지기 어려울 것만 같았어요. 사실 자퇴생이라 하면 문제아일 것 같다는 편견이 있잖아요. 그런데 알고 보면 아이들 모두 각자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어요.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부터 경제적인 이유로 일을 해야 하는 친구까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친구들이었죠.

관계에 대한 상처가 많은 아이들이다 보니 처음에는 표정이 너무 어두웠고, 아이들끼리 서로 눈도 안 마주칠 정도로 어색해했죠. 6개월간 가벼운 등산부터, 마라톤이나 경비행기 탑승까지 다양한 활동을 함께 하면서 이제는 모두 친구가 됐어요. 특히, 아이들의 표정이 몰라보게 밝아 졌죠.


자퇴생이라는 꼬리표, 학교를 나온 9명의 아이들은 점점 생기를 잃어갔다. 그녀의 바이올린 선율과 멘토링은 모두에게 온기를 불어넣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빛날윤미를 비롯한 싱어송라이터 오분쉼표, 김성훈 영상 감독 그리고 그녀의 남편이자 파일럿인 오현호 씨의 총괄 디렉팅으로 이번 버스킹 프로젝트는 학교 밖 청소년 센터 프로젝트의 좋은 선례가 되었다.

현재 모든 음원 사이트에서 아이들이 직접 쓰고 부른 ‘GO OUTSIDE’라는 노래를 들을 수 있다. 또한, 아이들의 과거나 현재, 미래에 관한 생각을 쓴 글과 활동 내용을 모아 책으로도 곧 출간될 예정이다.

사실 전국 글로벌 음악콩쿠르 전체 대상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계신 만큼 조금 더 쉬운 길을 걸을 수도 있었을 텐데, 봉사라는 길을 걷고 계시네요. 봉사활동은 언제부터 시작하시게 됐나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봉사 활동을 다니긴 했는데,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가 간암 투병을 위해 요양원에 계실 때부터였어요.

요양원 관계자가 제게 연주를 부탁하셔서 한 시간짜리 프로그램을 맡은 게 그 시작이었죠. 그때 제 공연을 보신 아버지가 “나는 네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길 꿈꿨는데, 이렇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연주가 더 값진 것 같다. 너는 나의 꿈을 이뤄 줬다.” 이렇게 말씀해 주셨어요.

사실 아버지는 제게 거는 기대가 크셨어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길 바라셨고, 그만큼 후원도 많이 해주셨죠. 그래서 항상 죄송한 마음이 마음 한편에 있었는데, 저 말을 들으니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는 느낌이 들면서 ‘아, 앞으로 내가 이렇게 살아야겠구나’하는 결심을 하게 됐어요.

어떨 때 봉사를 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하시나요? 혹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베이비박스 속 아이들은 사실 정말 힘든 조건 속에서 삶을 시작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 아이들은 천사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밝아요. 우리는 일상에서도 조금만 불편한 게 있어도 불평, 불만이 있는데 그 아이들은 사소한 것에도 기뻐하고 행복해하거든요. 무대 위에서 연주하고 있으면 제 옆으로 나와서 같이 춤을 추기도 해요. 그런 걸 볼 때 너무나 행복해요.

또 시골이나 섬 같은 외지에 계신 분들은 사실 문화생활을 할 기회가 많이 없잖아요. 그래서 제 연주를 들으시고 “평생 이런 연주를 언제 또 들어보겠냐”하시며 고맙다”는 말씀을 전하시기도 하고, “죽으려고 했지만, 이 연주를 듣고 다시 한번 살아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도 계셨죠. 그런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들을 때 가장 보람을 느껴요.

사람을 살리는 연주가라는 말이 참 어울리는 이야기네요. 그렇다면 빛날윤미 씨가 생각하는 치유란 무엇인가요?
나눔으로써 치유를 받는다고 생각해요. 가지려 할 때 더 불행해지고, 제가 주려 할 때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받게 됐거든요. 그래서 봉사는 제가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항상 일깨워 줘요.

사실 봉사라는 것, 그것도 몇 년째 꾸준한 봉사를 한다는 것은 보통 마음가짐으로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자신의 특기를 남에게 베푸는 일이지만, 연주 봉사를 하면서 분명 힘들었던 부분도 있으셨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시는 편인가요?
현실적으로 100% 봉사만을 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 일과 봉사, 그 밸런스에 대한 딜레마가 있었어요. 베이비박스처럼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곳은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가지만, 봉사활동을 다니다 보면 착취에 가까운 수준으로 봉사를 악이용하는 곳도 많아서 허탈감이 몰려온 적도 있거든요. 이런저런 문제들로 힘이 들 때마다 다행히도 남편이 큰 버팀목이 됐죠.

이번 고아웃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기 전에도 남편이 “이 친구들은 우리가 진심으로 대하는지 아닌지 안다. 단발성으로 끝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평생 친구처럼 멘토처럼 아이들을 대하자”는 말을 했어요. 남편은 사랑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참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 힘들 때마다 의지가 많이 돼요.


김빛날윤미의 남편 오현호는 모험과 도전정신을 주제로 한 『부시파일럿, 나는 길이 없는 곳으로 간다』의 저자로, 베스트 셀러의 작가 반열에 오르며 강연자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1년 전, <여행 대학>이라는 커뮤니티에서 연주자로 초청받았던 그녀는 그의 꿈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와 다시 한번 대화를 나눠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 꿈은 어떤 색깔이었을까?



빛날윤미 씨가 다시 한번 대화를 하고 싶게끔 오현호 씨의 꿈은 무엇이 었는지 굉장히 궁금해지네요.
이삼십 명이 돌아가면서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어요. 그때 한 남자가 경비행기로 장애인, 암 환자, 청소년 이렇게 나라마다 세 사람을 뽑아서 비행할 수 있는 캠페인을 하는 것이 꿈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간암으로 아버지를 잃어봤기 때문에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그 계기가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떠나는 날 아침에서야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눴고, 우여곡절 끝에 일 년 뒤 결혼까지 하게 됐죠. (웃음)

가치관이 잘 맞았고, 무엇보다 이 사람과 함께 했을 때 훨씬 더 아름다운 길을 만들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젠가 남편이 경비행기 프로젝트를 할 때 제가 그 옆에서 함께 연주를 해주는 상상을 해요.

빛날윤미 씨와 같은 분들이 있어서 클래식을 굉장히 친숙하게 느낄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좀 더 많은 사람이 대중가요처럼 클래식을 즐길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클래식이라는 악기로 대중들에게 친숙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트로트 같은 경우도 클래식으로 들으면 더 색다르고 흥미롭잖아요. 그래서 현장의 연령대나 대상에 따라 연주곡을 정해요.

어르신들은 트로트 장르를 좋아하시니까 칠갑산 같은 곡을 연주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는 아기상어를 연주하기도 해요. (웃음) 관중이 행복해할 때, 저도 더 재미있고 더 의미 있는 연주가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요즘은 SNS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요. 특히, 유튜브 같은 경우는 전 세계에서 더 쉽게 볼 수 있으니까 저를 알리기 가장 좋은 매체라고 생각하죠. 제 이름이 워낙 특이하니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금방 제 채널을 찾으실 수 있어요.

앞으로 어떤 바이올리니스트 혹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신가요?
클래식이 대중화될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성장하는 사람, 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을 살리는 연주가’가 되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기는 아직 부끄럽지만, 말을 해야 그렇게 살아가려고 스스로 노력할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올해 고아웃사이드 프로젝트 다음으로 가장 큰 프로젝트가 결혼 준비였어요. 그런데 우리 나의 결혼 준비 과정에서 필요 이상으로 허례허식인 부분이 많다는 것에 놀랐어요. 그래서 저희는 부모님께 최대한 도움을 안 받고 소박하게 하려고 노력했는데, 감사하게도 여러 곳에서 많은 분이 도와주셨죠. 결혼준비를 하면서 예쁜, 형식적인 결혼식보다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좋은 결혼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됐어요.

사실 살면서 모든 게 그런 것 같아요. 일생에 한 번뿐인 순간에 반짝이는 것보다,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가 퇴색되지 않고 오랫동안 빛날 수 있도록, 사람들이 가치 있는 것들에 조금 더 마음을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저부터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고아웃사이트 프로젝트 처럼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도 자랑스럽게 되새길 수 있는 추억들을 많이 만들어가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글 손시현 / 정리 에스카사 편집부